재료 간의 힘을 재배치하려는 물질세계 내의 시도는 디지털 화면 앞에서 무력해진다. 디지털 화면은 모든 색과 소리, 물질성을 다 포섭했거나, 포섭할 예정이며 시공간을 초월한다. 디지털 세계는 물질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시공간을 재료로 부릴 수 있다. 디지털 기기는 힘을 가질수록 더 미시적으로 압축되고 가벼워지고 지속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디지털의 이 완벽함은 시공간에 종속되는 인간의 행동 양식을 제압한다. 디지털 작업은 인간의 시선을 먹고 자라며, 시선은 디지털 세계의 안내자가 되어 화면에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몸을 데리고 다닌다. 시선은 항상 몸에 앞서 있으며 몸은 시선을 따라갈 뿐, 직접 보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은 근육을 잃어간다. 유일한 몸과 일방적인 관계를 맺으며 가상 세계를 활보하는 시선은 물질세계에서 다른 몸들이 공유하는 장소에 자리하게 되면 어떻게 몸을 안내해야 할지 모른다. 근육을 잃어가는 몸의 움직임은 시선에만 의지하여 쉴 틈을 찾아 헤맨다. 몸을 뉘기 위해 시선이 빈틈을 찾는 것은 존재하기 위해 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비우기 위해 몸을 움직여 행동한다. 재료를 더하고 또 덜어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과 지우는 시간을 비등하게 소요하면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지워간다. 이미지를 없애는 행위는 내 작업에서 이미지를 더하는 행위로 전위된다. 장면을 긁거나 지워내어 불완전한 흔적을 만들고 그로써 열림을 기한다. 나는 그림에서 선들이 찰과상 또는 흔적으로 쌓여가는 작업을 주도하지 않고 거기에 동참할 뿐이다. 주체는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양도된다.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형상의 개별적 특수성은 식별되지 않은 채 조형적으로 존재하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 추측만을 가능하게 하고, 이 거리 두기를 통해서 배경과 인물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한다. 확실하지 않은 표현들은 수많은 서술의 가능성을 지닌 채, 시선이 그 앞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준다. 그러고 나서 몸의 움직임은 비로소 자신을 돌보는 듯하다. 그림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시선은 있으면서 없는 것, 뭔가 지워진 것을 봄으로써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림 속에서 문자는 허공을 유영하다 아스러진다. 말의 화자는 알 수 없고, 말은 더는 말이 아니다. 소음은 곧 침묵이 되고 음소거된 사유는 그림에 축적된다. 그릴수록 깊어지고 불투명해지는 그림, 그 틀 안에 늘어나는 형상과 흔적들은 다 같이 무거워지는 것일까, 무게를 나눠 갖고 다 같이 가벼워지는 것일까? 무게라는 것은 그림 안에 담길 수 있긴 한 것일까? 질문을 품고 말하기 위해 침묵한다. 

   오늘도 공간을 접어놓고 몸을 뉠 자리를 펼친다. 근육 잃은 움직임을 그림 속에서 다시 운동하려 한다. 하기 위해 하지 않는다. 2020